본문
[月刊시사우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짊어진 대한민국,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자살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이 없다는 방증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살은 사치품에 불과하다.
|
희망은 우리 삶의 활력소다. 희망을 잃어버린 삶은 죽음의 삶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행복의 파랑새를 만날 수 있다.
절망 속에서도 시련을 극복하고 인생을 화려하게 수 놓은 위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몇 명을 소개하면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세계적인 정신의학자가 된 빅터 플랭클(Viktor Frankl)이다.
언제 처형당할지 모르는 그는 자신 앞에서 부모와 부인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어도 유리 조각을 주워 매일매일 면도를 하고 자기 관리를 하면서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에 감동한 사형집행관이 사형을 면제해 주는 바람에 구사일생하여 세계적인 정신의학자가 되었다.
존F. 케네디도 죽음의 역경을 딛고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어뢰정 침몰 사건으로 배가 침몰했을 때 망망대해에서 헤엄쳐서 구사일생했다. 이때 그는 사람이 무엇인가 하겠다고 하면 그 신념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힘이 훗날 대통령이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주인공은 코넬 할랜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다. 샌더스만큼 시련과 실패, 좌절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살 때 어머니의 재혼으로 고생길로 들어갔다.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유람선 선원, 주유원, 페인트공, 타이어 영업사원, 철도원 등 밑바닥 인생길을 걸었다.
그의 나이 65세 때 전 밑천을 털어 조그마한 레스토랑을 차렸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파산하여 길거리에 나 앉았다. 이제 수중에 남은 것이라고는 사회보장금으로 받은 105불이 전부였다. 이것을 가지고 희망의 불씨를 피웠다. 레스토랑에서 터득한 독특한 조리법을 가지고 인생 재기에 나섰다.
65세라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나이라고 하지만 샌더스는 나이라는 숫자에 노예가 되지 않았다. 이 기술을 팔기 위해 낡은 압력솥을 하나 구해 중고화물차를 몰고 미국 전역을 누볐다.
노인네가 조리법을 팔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치매 환자 취급을 했다. 하지만 샌더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군가는 자신의 특별조리법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2년 동안 1,008명이나 만났다. 전부 퇴짜를 놓았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1,009번째의 사람을 만났다. 그는 요리비법을 200만 달러에 사겠다고 하는 눈 밝은 사업가를 만났다.
고진감래라고 그는 수 없는 수모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거금을 받는 꿈을 실현했다. 포기할 줄 모르는 그의 끈질긴 집념이 전 세계에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착근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009번이란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중국 등 공산국가는 물론 세계 전역에서 허연 수염을 기른 샌더스 할배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65세에 105달러의 밑천으로 67세에 200만 달러의 로얄티를 받아 샌더스는 거부가 되었다.
한때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타케 히로타다도 그 반열에 올랐지만,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그는 양팔, 양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 절단으로 태어난 장애인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회에 희망의 별을 쏘았다. 하지만 5명의 여성과 불륜 스캔들로 빛이 바랬다.
우리나라에도 오토타케 히로타다와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 이름은 바로 이범식 박사다. 그는 “황금발의 사나이”로 통한다. 올해 60세인 이범식 박사는 22살 때 감전으로 오른쪽 다리와 양팔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멀쩡한 사지가 안전사고로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이 박사는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하지만 이 박사는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양팔과 오른쪽 다리도 없고 왼쪽 다리밖에 없기 때문에 양팔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부러웠다고 했다. 컴퓨터 사업을 한 그는 왼쪽 발가락으로 마우스를 조작하고 키보드를 누르면서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때까지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과 같은 노력을 했다.
진주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래가 속살을 파고들 때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폐사하고 만다. 하지만 모래가 속살에 박히면 진주층(nacre)을 만들기 위해 진주즙을 짜내어 도포하고 도포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월광(月光)을 수년간 받아들이면 진주가 탄생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과 같이 이 박사의 시련 극복이 오늘날의 오체불만족의 인간승리자가 되었다.
왼쪽 발가락으로 밥을 먹고 휠체어를 조작하고 붓글씨도 쓰면서 작가에 입문하여 기행문을 쓰는 등 왕성한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자격증도 여러 개나 땄다. 50줄에 학구열을 불태우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4년 전에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우리나라 최초 양팔 없는 교수가 되는 신화도 썼다.
오늘날의 이 박사가 있게 된 것은 본인의 시련 극복을 위한 의지와 더불어 20년 전에 한 봉사동호회에서 만난 김봉덕 여사의 눈물겨운 버팀목 역할을 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이 박사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과 장애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통합과 장애인 복지를 위해 광화문에서 경북 경산까지 31일간 약 460km의 도보 행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지땀이 흐르는 더위에 정상인이라도 엄두도 못 낼 일을 해낸 의지의 사나이다.
그 여세를 몰아 올해는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염원하는 도보 홍보 및 응원을 위해 7월7일부터 8월1일까지 빛고을 광주 무등산에서 출발하여 대구·경주까지 약 400km를 도보로 시작하여 지금도 비지땀을 흘리면서 인간의 한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오토타케 히로타다는 이 박사에게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왜냐하면, 오토타케 히로타다는 윤리 도덕성이 꽝이고 태어날 때부터 양팔 양다리가 없는 선천적인 장애라서 스스로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 박사는 다르다. 이 박사는 22살까지는 이런 장애가 없었다. 불의의 안전사고로 양팔 오른 다리가 없어진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그의 고뇌는 하늘과 땅만이 알 것이다.
하루아침에 중증장애인이 된 이 박사는 절망하지 않고 이를 극복한 진짜 오체불만족의 인간승리자다. 왼발이라도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처음에는 손이 있는 사람이 참으로 부러웠다고 하는 이 박사. 좌절과 포기는 사치품이라는 “황금발의 사나이”로 거듭 태어나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구김살이 없는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고 밝은 얼굴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요즘 살기 힘들다. 죽고 싶다. 내 팔자가 왜 이러냐고 한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필자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당신은 몇 번을 실패했다고 목줄을 빼고 신세타령을 하는가. 샌더스만큼 좌절을 해보았는가. 죽음의 문턱에서도 생의 끈을 놓지 않은 빅터 플랭클과 같은 가슴졸이를 해보았는가.
특히 멀쩡한 사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좌절하고 죽고 싶다고 노래하면 “황금발의 사나이” 이범식 박사에게 허락을 받으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시대의 나침판이요 등대며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박사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단언한다. 살다가 힘들면 이 박사를 만나보시라.
그의 인간승리를 배워보시라고.